[여수여행-진남관]조선시대 수군의 본거지

2013. 9. 24. 13:53ღ 전라남도여행 ღ/· 여수

 

 

 

좀 길어도~~~~ 우리를 있게 해준 역사적 건물이니까...함 읽어 봅시다.

 

 

여수 진남관(麗水 鎭南館)은 조선시대 사백여 년간 수군의 본거지(전라좌수영)로 혹은 구국의 성지로 이용되었고 전승의 사명을 다한 역사적 현장으로 여수를 상징하는 곳이다.

진남관 정면에 있는 망해루는 일제 강점기에 철거된 것을 1991년 4월에 재 복원한 2층 누각이다. 또한 1599년 선조 32년 기해년 12월에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이 정유재란으로 불타버린 진해루터에 세운 75칸의 거대한 객사이다. 그 후 절도사 이도빈이 1664년 갑진년에 개축하고 숙종 42년(1716) 94대 이여옥 수사 때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고 숙종 44년(1718) 95대 수사 이재면이 건립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객사는 조선 역대 왕들의 궐패를 모시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는 정례참배를 행했으며 또한 국가에 경사가 있을 때는 하례를 드리고 나라에 슬픔이 있을 때는 봉도식을 관민일동이 수행해 왔다. 1910년 고종 4년 경술년 때에는 여수공립보통학교를 시초로 여수중학교와 야간상업중학원 등의 학교로 사용한 바 있다. 준국보 제480호로 1959년에는 보물 제324호로 지정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보수에 착수하게 되었으며, 1973년 단청을 하고 1978년에 4억 2천만원을 투입하여 진입도로를 개설한 바 있다. 2001년, 국보로 승격 지정했다.

건평 240평, 정면 15칸, 측면 5칸으로 길이 75cm, 높이 14m, 둘레 2.4m의 기둥 68개가 거대하고 웅장한 모양을 자랑하며 한국 최대의 단층 목조건물이다. 조선 초기 객사양식으로서 보기 드문 건물이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배치하고 그 사이의 공간에는 화반을 받쳤는데 이러한 구성의 건축은 주심포 내지는 익공집계통의 수법에 의하여 2출목으로 짜올려서 외목도리를 받쳤다. 건물의 전후면에는 안쪽으로 제2주례에 고주들을 배치하여 그 위에 대량을 가구하였다.

 

 

 

 

 

 

마침, 해설하시분이 계셔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기억은 안 나지만...

 

 

 

 

 

 

 

 

 

 

 

 

 

 

 

 

전남유형문화재 제33호. 조선시대. 임진왜란 당시 왜적들의 공세가 심하자 이순신 장군이 침공을 막아내기 위한 의인전술의 일환책으로 석인 7구를 세워 승전을 이끌었다고 전해오는 석조물이다. 현재 1구만이 남아있다.

 

 

 

 

진남관에서 벽화마을쪽으로 빠지는 쪽문이 있는데...그 문을 통해서..진남관 뒤쪽을 갈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여수야경을 보기 위해~ 돌산공원을 가면....밤에도 멋지게~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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